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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의열단 이야기, 독립운동을 친일파는 테러라고 한다.

by 차트공장장_ 202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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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는 갈수록 강압적이었고, 조선 민중의 고통은 날로 커져갔다. 그들은 독립을 꿈꾸었으나,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과 경찰력 앞에서 무력했다. 일제는 조선인을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했으며, 일상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바로 '의열단'이었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김원봉을 중심으로 조직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 그들은 오직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일제의 심장부를 겨누기 시작했다.

  의열단은 무력 투쟁을 통해 일본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친일파 관료들을 처단하려 했다. 그들은 폭탄과 권총을 손에 쥐고, 목숨을 걸고 임무에 나섰다.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극단적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조선 민중의 억눌린 분노를 대변하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그 소리는 일제의 폭정에 항거하는 조선의 외침이었다.

 

  김상옥은 그 외침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종로 경찰서를 공격한 인물로, 의열단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1923년 1월, 그는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이로 인해 일제 경찰 조직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종로 경찰서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을 자행하던 일제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김상옥은 이곳을 목표로 정하고, 몇 개월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는 스스로 폭탄을 제작했고, 독립을 위한 결전의 날을 준비했다. 그날, 종로의 거리는 김상옥의 폭탄 소리로 뒤흔들렸다. 경찰들은 그를 잡으려 혈안이 되었지만, 그는 끝까지 저항했다. 결국 경찰에 포위된 그는 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립을 위한 불멸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용기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의열단의 또 다른 영웅, 나석주.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공격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경제적 수탈의 중심이었으며, 조선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조선의 경제를 착취하는 데 앞장섰다. 나석주는 이 회사의 핵심 인물들을 처단하고, 그들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 거사를 결심했다. 1926년 12월,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목표를 완전히 타격하지 못했고, 그는 총격전 끝에 체포되었다. 실패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행동은 조선 민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석주는 처형되었으나, 그의 이름은 조선의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의 의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의 희생은 독립운동의 불씨로 남았다.

 

  김지섭 또한 의열단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의열단의 최고령 단원으로,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직접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1924년, 김지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의 궁 앞에서 폭탄을 던졌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폭탄은 습기로 인해 불발되었고, 결국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지섭은 끝내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실패했지만, 그의 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의열단의 활동은 일제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조선 민중에게 독립의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폭탄 소리는 단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을 되찾기 위한, 그리고 조선 민중에게 잃어버린 자긍심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열단의 투쟁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많은 동지들이 체포되었고,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열단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또 다른 거사를 준비했다. 그들에게 실패는 끝이 아니었다. 실패 속에서도 그들은 다시 일어섰고, 그들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일제는 의열단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조선의 독립운동 중에서도 의열단을 가장 위험한 단체로 간주했다. 의열단의 거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파괴를 넘어서, 일제의 심장을 위협하는 정신적인 공격이었다. 의열단이 던진 폭탄은 단지 건물과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의 심리적 기반을 뒤흔드는 상징이었다. 일제는 의열단의 투쟁이 조선 민중에게 독립의 가능성을 심어줄까 두려워했다.

 

  오늘날까지도 의열단의 희생을 테러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투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의열단의 투쟁은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의 억압에 맞선 정당한 저항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억눌려 살 수 없는 조선 민중의 절박한 외침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들이 던진 폭탄은 단지 건물을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를 갈망하는 조선인의 목소리였다.

 

  의열단은 당시 조선 민중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그들의 거사는 일제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의열단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후대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의열단.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 쉬는 우리의 기억이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정신적인 유산이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의열단, 그들의 이름은 비록 역사 속에 묻혔을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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