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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겨레얼살리기국민본부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원고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1) “박물관”의 탄생이 곧 수탈의 시작이었다
1909년, 일제는 조선총독부 설립 전부터 ‘경주박물관 설치’를 계획했습니다.
겉으로는 문화유산 보호와 연구를 위한 시설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신라 유물을 집중 수집하고 통제하려는 식민지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 1913년: “경주이사청 박물관” 설치 → 일본인 관리 감독
- 이후 다수의 고분 발굴, 사찰 조사, 유물 출토 → 일본 이송 루트로 활용
- 📦 유물은 도쿄박물관, 나라박물관 등으로 대거 반출
🧠 박물관은 ‘보존’을 말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에게 박물관은 약탈의 창고처럼 여겨졌습니다.
🗺️ 2) 일본의 고대사 확장 논리에 도구로 이용된 신라 유물
일제는 경주의 신라 유물을 통해,
“일본 고대사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다”는
식민사관을 뒷받침하려 했습니다.
- “신라의 문화는 일본 야마토 문화와 유사하다”
- “신라의 불교 조각은 일본에서 발전했다”
- “한국은 독자적인 문명이 아닌, 일본의 영향권 내 존재였다”
📌 이런 주장을 위해 신라 금관, 불상, 석탑 부재 등 주요 유물을
수집하여 자국 박물관에 전시하며 자국 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했습니다.

🧱 3) 유물은 일본으로, 전시는 껍데기만
- 경주 내 수많은 고분, 사찰,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경주 지역에 남지 않고 도쿄, 오사카 등 일본 본토로 이송
- 경주박물관에는 상대적으로 ‘2선급’ 유물 전시,
핵심 유물은 ‘연구 차 일본 보관’이라는 명목으로 떠남
🔍 예시: 천마총 출토 유물 일부도 원래는 외부 반출될 뻔했으나
민간의 강력한 반대와 이후 정부 관리 강화로 막힘
🛠️ 4) 광복 이후의 전환: ‘되찾은 박물관’으로서의 의미
해방 이후 경주박물관은 1975년,
정식으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재편되어
문화재의 수호자이자 교육의 장으로 거듭납니다.
- 일본식 운영 체계 철폐
- 국내 출토 유물 환수 및 재정리 작업 진행
-
경주 시민의 정체성·자긍심과 연결된 문화 공간으로 변화
📌 일제가 문화재를 전시 도구로 삼았다면,
오늘의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 해석의 주체를 되찾은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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